[컴퓨터 관리] 죽어가는 그래픽카드 쿨러를 소생시킨 뿌리는 그리스
가혹한 혹사로 죽어가는 VGA 쿨러
작년 배틀그라운드가 출시되고, GTX980의 힘을 빌려 친구들과 꾸준히 플레이를 해왔습니다. 그러나 헬적화에 이름에 걸맞는 프레임 드랍, 특정 지역만 가면 더 심해지는 엄청난 프레임 드랍을 견디지 못하고 AORUS GRAPHICS ENGINE을 사용해 오버클럭을 해 플레이했죠.
오버클럭 자체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다만, 수율 조정을 위해 한계 온도를 기본값인 79℃에서 90℃로 올려서 사용했던 것이 문제가 된 것 같습니다. (확실하진 않음)
배그는 세 달 전 하드캐리머신이 군대를 가서 접었고, 이후 히오스나 게리모드를 주로 플레이했는데, 평소보다 훨씬 심한 프레임 드랍에 뚝뚝 끊기는 현상이 자주 발생해 HWMonitor로 확인한 결과, 쿨러 속도가 평균 1200RPM => 250~260RPM으로 급감해있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기겁한 저는 당장 케이스를 열어 쿨러의 상태를 확인했는데, 총 3개의 쿨러 중 1개는 완전히 멈추고, 한 개는 눈으로 돌아가는 속도를 잴 수 있을 만큼 느려졌고, 멀쩡한 놈은 한 개 뿐이었습니다.
당연히 쿨러의 속도가 떨어지니 온도가 올라가고, 안전 장치로 클럭이 떨어져 코어 클럭이 1357MHz => 120~240MHz로 떨어진 채 가동중이었죠.
해결 방안 모색
해결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구글에 VGA 쿨러를 살릴 방법을 검색해 봤더니 WD40을 뿌려라, 미싱기름을 떨궈라같은 미친 개소리가 난무해서 거르고, 예전 어느 한 유튜버가 베어링으로 피젯 스피너를 만들 때 베어링 내부의 구슬에 그리스가 덕지덕지 발라져 있던 모습을 떠올려 그리스를 구매하고자 했는데...
문제는 제 기가바이트사의 980의 쿨러는 전용 드라이버(흔히들 맥가이버 키트라고 불리는 키트에 들어있는 작은 드라이버)가 없으면 뜯을 수가 없게 돼있었습니다. 나사가 너무 작아 집에 있는 두 종류의 드라이버 모두 사용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 당장 한 끼 밥 먹을 돈이 아까운 처지라 쿨러 하나 살리자고 그리스에 드라이버 키트까지 사자 생각하니 그냥 이대로 쓸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주사기로 주입하자!
그래서 생각한 것이 주사기입니다. 강아지와 같은 작은 동물들에게 처방할 때 사용하는 500원짜리 주사기는 약국에 가면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옷을 차려입고 일단 약국으로 향했습니다만, 약국은 어디 가고 웬 농산물 판매점이 들어서 있더군요. 아무래도 방구석에 쳐박혀서 일, 식사, 게임, 식사, 일, 잠을 무한 반복하던 몇 년 사이에 동네가 많이 바뀐 것 같았습니다.
인생에 대한 회의감을 뒤로하고, 만물상을 찾아갔습니다. 조목조목 적당한 크기의 철판을 예로 들면서 컴퓨터 쿨러는 이만하고, 베어링은 요만하고, 여기에 그리스를 주입하려고 주사기를 찾는데 약국이 닫아 구입할 수가 없어 혹시 주사기와 그리스가 있는지 여쭤볼라고 왔다고 했습니다. 헌데, 시골 인심 다 옛말인지 말마다 소리를 빽빽 지르고 초면에 반말을 난무하는 데다가, 분명 설명을 다 했는데 자기가 전문가이지 당신이 전문가냐며 4만 5천원짜리 철제 그리스 주입기를 사라고 하는 주인장 노인네에게 질려서 많이 팔라고 하고 나와버렸죠. 세상 넓은 줄 모르는 노인네였습니다.
열불이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10미터쯤 옆에 있는 철물점에 들어갔습니다. 똑같은 설명을 하자 지금 이 포스트를 쓰는 이유인 뿌리는 그리스를 보여주시더군요.
뿌리는 그리스!
네. 뭐 설명이 아니라 정말 상품명이 뿌리는 그리스입니다. 그리고 사용 방법도 정확히 상품명대로입니다. 혹시 몰라 쿨러 팬에 써도 되냐고 한 번 더 여쭤봤는데, 문제 없다는 말씀을 듣고 5천원에 구입해 바로 집으로 왔습니다.
뿌리는 그리스는 아래와 같이 생겼습니다.
첫인상은 바퀴벌레 잡는데 쓰면 좋겠다... 정도? 살충 스프레이와 외관이 많이 비슷합니다만 길이는 2/3정도로 짧습니다.
아무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주사기는 없지만 다행히 쿨러 케이스에 틈이 많아서 노즐을 펴고 옆으로 집어넣으니 쿨러와 받침 사이의 틈, 즉 베어링이 있는 틈에 노즐이 닿더군요. 너무 세게 나와 기판에 흐를라 크림이(애완견) 콧잔등을 쓰다듬듯이 살포시 눌렀습니다. 조금씩 새어나오는 것 같으면 쿨러를 다섯바퀴정도 손가락으로 돌려주니 스며들고, 이렇게 세 번 정도 반복하니 부드러워진 것 같아서 다른 쿨러도 작업하고... 멀쩡하던 쿨러까지 총 세 개의 쿨러에 모두 그리스를 도포했습니다.
확실한 효과
도포를 마치고, VGA를 장착하고, 케이스는 아직 열어둔 채 전원을 넣었습니다. 그런데 어라? 뭔가 힘이 없는 것 같았죠. 아직 제대로 스며들지 않아서 그런가보다 하고 AORUS Graphics Engine을 켜 FAN 속도를 수동으로 100%로 만들어버렸습니다.
효과는 굉장했습니다. 30초도 되지 않아 속도가 점점 올라가더니 순식간에 전성기 시절의 RPM인 1800RPM으로 급부상! HWMonitor에도 잘 표시되는 것으로 봐서 쿨러 속도 측정기에는 문제가 없던 것으로 확인되었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교훈
그래픽카드의 한계 온도가 79℃로 설정돼 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100℃ 이상에서도 잘 버티는 GPU 코어에도 불구하고 왜 79℃로 설정해놨을까? 순간적으로 올라가는 온도가 설정치 이상이라서 그런가? 라고 생각했고, 전원부 온도를 포함해 저 생각도 맞지만, 쿨러의 수명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코어의 온도가 올라가면 방열판의 온도도 올라가고, 방열판에 쿨러가 닿아있는 제 쿨러같은 경우 쿨러의 온도도 올라갑니다. 모터는 상관없지만, 베어링 안의 그리스는 상관있죠. 쿨러 구조가 어떻게 돼먹은건진 모르겠지만, 뜯지 않고 겉에서 주입만 해도 원상복귀 된것으로 보아 그리스를 주입기로 주입하는 일반 베어링과 달리 개방돼있다는 구조란 걸 알 수 있습니다.
베어링과 그리스가 개방돼있는 구조에 높은 열이 계속 가해지면 그리스가 녹아서 흘러내릴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혹은 경화될지도 모르죠. 아무튼 높은 온도는 코어 뿐 아니라 쿨러 수명에도 좋지 않단 것을 배웠습니다.
물론, 팬이 정상 작동하는것을 확인하자 마자 한계 온도를 87℃로 다시 올리긴 했지만, 아무튼 그렇다고요. 깔깔
미싱기름을 떨구라는건 제대로 된 조언입니다... 미싱기름 = 스핀들유 베어링에 쓰이는 고속윤활유 그런데 베어링 부분에 정확히 넣는게 귀찮으니 그냥 뿌리는 구리스로 칙칙하는게 제일 편하긴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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